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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노무현

한길사

김수경 지음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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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모든 진실한 것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밟고서만 오는 법이었다.”

-작가 김수경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 김수경, 계간 <외국문학>, 월간 <문학정신>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자, 도서출판 열음사 대표이며, 우리들병원의 설립인이자 경영인으로 알려진 김수경.



그러나 무엇보다“그녀 김수경”은 노무현이 아직 대통령으로서 공적 생활을 하지 않았던 시기에 노무현 옆에서 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들었던 노무현의 친구다. 1990년대 초 김정길(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소개로 만나게 된 노무현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애당초 그의 정치적 신념이 그 실천의지가 진심일까 하는 의심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의 뜻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노무현은 그녀의 친구이자, 우리 5천만 국민에게는 공동의 아픈 기억으로, 늘 잊히지 않는 사람, 부재함으로써 늘 현존하는 사람, 늘 그리운 사람이다.



스스로를 추방시켰기에 추방되지 않는 자, 스스로를 추락시켰기에 추락되지 않는 자, 우리 시대 극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스스로의‘이론의 여지없는 부서짐’으로, 형언하기 힘든 ‘추상’으로 압축해버린 비극의 원형. 노무현은 우리가 가장 대면하기 힘든 진실, 그러나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 되어버렸다.



<내 친구 노무현>은 기존의 노무현 평전이나 그의 행적과 활동에 바탕을 둔 사실 및 기록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과 장르의 작품이다. 우리 동시대인 누구나 기억하는 공동의 기억이자,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소재 노무현을 쓰는 데 있어 작가 김수경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가능한 글의 형식을 찾는 것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글쓰기, 출판이라는 사건을 통해 공론의 장에서 담론될 것이다. 은폐함으로써 폭로하고, 상상함으로써 실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진실을 계시하기 위한 가장 담대하고 진지한 행위가‘놀이’처럼 진행될 것이다.



노무현 개인의 삶이 환기되고, 우연과 필연으로 교차된 노무현과 김수경의 삶이 직조될 것이다. 실재건 상상이건, 기억의 시퀀스건, 몽타주건, 그들의 이야기가 텍스트로 물화되는 순간, 타자의 수많은 독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두려움? 노무현의 죽음 이후 노무현에 대한 글쓰기는 작가 김수경 안에서 이미 운명적으로 배태되었을 수 있다. 글쓰기가 기획되고, 출판사의 원고 독려가 연일 진행되면서 그녀를 괴롭힌 것은“폭포수처럼 배란되는”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과 함께 수반되는“노무현 글쓰기”의 부질없음이었다.



“기억한다는 것은 아니 쓴다는 일은 가장 잔혹하고 끔찍한 일인지도 몰라.

그런데 그녀마저도 이 세상에다 그를 상품으로 내놓으려 하다니!

그들 사이에 나눈 이런 사적인 대화를 기록하려 하다니!”



그러나“수많은 단어와 절로 이루어진 자식들을 세상 밖으로 내지르고 싶은 산욕”은 걷잡을 수 없었다. 노무현의 순진무구함, 노무현의 솔직함이“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화 아니 헛된 교양”을 통해 왜곡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녀의 글쓰기는 좌초한다. 글쓰기의 불능성 속에서 작가 김수경은 방황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친구 노무현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묘비는 결국 글쓰기밖에 없었다. 노무현의 49재를 보내고, 그의 5주기를 보낼 때까지도 강렬하게 느끼지 못했던 그의 죽음을, 그의 부재를, 산욕에 들떠 글자를“두드려나갔던”,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라곤 컴퓨터 화면 속 문자 일루전Illusion이 전부였던 지난 몇 달 간의 집필 기간에야 비로소 온몸으로 절감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평전? 실명 소설? 기존의 도식적 장르 개념에 김수경은 무심하다. 그런데 또 늘 장르가 문제였다.



“그런데 언제나 장르가 문제였다. 그건 말이야.

목욕탕 입구에서 여탕과 남탕이 갈라지는 것처럼 명확한 게 아니란 말이지.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노출과 은폐 사이에서.

모든 사이의 공란에서.

그녀가 쓰려는 글을 시나리오라고 불러야 하나 소설이라고 불러야 하나,

혹은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할지, 회고록이라고 불러야 할지,

판타지라고 불러야 할지, 환영이라고 불러야 할지.”



작가 김수경은 실재와 허구라는 이분법을 농락하듯 두 세계를 혼융하고 압축하고 입체화한다. 독자는 그 입체 속에 기이하게 빨려 들어간다. 내레이션은 시간 순차적 서사를 무시하며, 기억이 출몰하는 대로, 공간이 이동하는 대로 자유롭게 유영한다. 글은 쓰여지면 쓰여지는 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쓰여지지 않는 대로 쓰여진다. Mise-en-ecriture. 글쓰기 자체의 장면화. 혹은 노면露面 설계.



소설 속 주인공“그녀 김수경”은 작가 김수경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온다. 소설적 현재란 없으며 오로지 글쓰는 현재, 글이 탄생하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글쓰기 장면 자체를 노출하는 미장센을 일부러, 호기롭게, 구사한다. 완전한 나체, 철저하게 진실한 솔직함만이 소설적 진실을 태생시킨다고 작가는 믿는 듯하다.



제사題辭: 글의 내용 설명을 위해 명구를 첫머리에 인용하다.

<내 친구 노무현>을 인도하는 첫 번째 제사는 카잔차키스의 단언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에, 그래서 자유로운 자, 작가 김수경이 글을 쓸 수 있었던 다짐은 카잔차키스의 이 빛을 발하는 고뇌, 끓어오르는 초월적 활력 그 비슷한 것이지 않았을까? 또한 그녀가 인간 노무현에게서 본 진실이 바로 이 진실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겐 경이였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꿀 수 없었던 꿈을 꾸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놓았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게 했다.

효용의 가치뿐인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쩌면 무용한 자들의

현현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거짓 없는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는 마음으로 그 우정에 응답했고 도리를 다하려 했다. 그 또한 그랬다는 것이 고맙다.”



작가가 계시하고 싶은 진실은 또 있다. 드러내놓고 주장하지 않으나 분명히, 단호하게 말하는 진실. 그것은 노무현이라는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그의 주위에서부터 서서히 그를 포위해가는 기이한‘사냥감 몰이’시스템이다. 이 궁극적 사냥감과 더불어 그녀 자신이 포함된, 뭇 “추방당하는 자”들에게 꽂힌 공권력의 비수,“닌자의 칼”.



1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7개의 장으로 구성된 <내 친구 노무현>은‘차례’라는 말도 과감히 생략하는 비도식의 플랜plan을 짰다. 각 장은 하나로 요약할 수 없는 파편 같은 숱한 일화와 장면들로 몽타주 montage되지만, 결국 하나의 결정적 장면, 결정적 생生이다.



심장을 쪼개듯 아프게 환기되는 기억처럼 노무현의 육성이 들려온다.“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그녀가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전화해왔다. 그녀는“수천 가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말을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노무현도 1, 2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한참을 말없이 침묵했다.

1, 2분간의 침묵의 공간이 우주만큼 넓고 깊었다.

그 침묵의 끝자락에서 노무현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 장은 작가가 수차례 고쳐 쓰기를 거듭했던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바로‘그날’의 이야기다. 모멘텀. 봉하의 부엉이바위에서 그가 낙하하던 날, 산산이 부서지던 날… 거대한 충격과 애도의 물결 속. 실명들이 환기되며, 우리 모두를 그날 과거의 현재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의 두 눈이 유리창 건너편에서 그녀를 따뜻하게 다독이고 있었다.

맞아. 일종의 파수꾼 같아.”(안희정)



“그녀는 한순간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의 눈알 속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의 두 눈은 울어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유시민)



그리고“어떤 죽음의 형식도 죽음에 대한 해석도 슬픔을 넘어서지 못하는”계속해서 이상하게 터져나오는 오열.



2 Metaphysical Requiems ― 신해철에게



작가는 이 장을 쓸 때만 해도 신해철과 통화했다. 그리고 책이 출간될 무렵, 시독회 모임을 알리기 위해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받지 않는 전화. 신해철의 부재가 확정적 사실이 된 것은, 작가가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퇴고하고 있을 때였다. 신해철의 음악에 영감 받아 헌사된 Metaphysical Requiems 장은, 하여, 다시 한 번 미묘하게 수정되고 보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해철의 고통이 전해져왔다. 그녀는 그 고통을 맨살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폭음과 발작을, 그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가졌던

절망적 교향곡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고조되었고 증폭되었고 또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다. 그리고 찢어졌다.”



노무현의 부재가 불러온 기억의 출몰과 함께 늘 노무현을 노트북에, 아이패드에 연일 채워가던 중, 작가 김수경은 중국에서 노무현 5주기를 맞는다. 숲을 산책한다. 그를 추모한다. 레퀴엠을 듣는다. 신해철을 듣는다. 죽음의 이미지가 숲 속에 차오른다.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모든 정치적 담론을 걷어내고 싶은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다. 가장 고통스러운 애도, 새벽 숲의 황홀한 심포니. 승효상의 노무현 곡장. 붉은 암적색의 코르텐스틸.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철재.“노무현을 불멸의 반석 위로 올려놓을 철벽.”

“승효상은 노무현의 철학, 노무현의 가치란 말을 할 때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띄어 말했다.”



그녀 김수경은 승효상이 노무현에 대해 정의 내린“자발적 추방인”이라는 표현을 환기한다. 병원 원장“마누라”로 살아가던 그녀 김수경이 노무현을 운명적으로 처음 만난 부산 서면 로터리 1987년 6월 18일, 그 모멘텀. 가장 눈부신 하이라이트, 환각이든, 신열이든.



“그녀의 눈에는 그들 모두가 그 순간에는 스파르타쿠스였고,

체 게바라처럼 개개인의 존재가 황홀하게 빛났단 말이지.



그들 시위대의 맨 앞 중앙에 노무현이 서 있었다.

마주친 순간은 극히 짧았다.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이해와 수용.

그녀는 순교자처럼 거리에 서서 포효하고 있는 사내가

노무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3 올모스트 블루



작가 김수경은 노무현을 쓰면서 또다시 베네치아를 여행한다. 부득이한 여행, 그러나 베네치아는 얄궂게도 죽은 자들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침묵의 무한 공간 베네치아에서 그녀는 물 위에 떠 있는 무덤들을 환유해낸다. 추방당한 자들, 한없이 내쫓기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끝간 데서 찬연히 낙하한 자들. 그녀 김수경은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고, 하로동선 모임을, 잃어버린 세대를 추억한다. 정치적 낭인들이 뭉쳐 의기투합했던 시절, 상실의 시대, 쓸쓸하고도 씁쓸한 희비극, 자조와 농담 자욱한 블랙유머, 기이한 정치 삽화. 김영삼이 주도했던 3당 합당의 진실, 그 이면의 폭로. 정치론적 통찰.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상은 때론 한 줄의 명사구로 불쑥 귀결된다. 그것은 절제된, 그러나 촌철살인 하는 명구다. 방향타를 잃은 듯 자유자재로 흐르던 이미지들은, 단어들은 범람하는 지점에서 얼른 숨을 고르고 절제된다. 억누른 고통, 억누른 감성, 명징한 인식, 담대하고‘뻔뻔하게’지적하고, 경쾌하게 차가운 미소를‘날리며’사라지는 그녀. 행간 속 침묵. 독자는 공모의 미소를 입가에 띤다. YS를 유일하게 따라가지 않은 김정길, 그리고 노무현, 정치가街의 한 야사野史가 시대의 희비극처럼. 촌극처럼 삽입된다.



4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노무현과 김수경은 마광수 사건과 우리들병원 치료비 사건으로 얽히고, 그들의 인생은 사적으로 공적으로 교직된다.



“개울물이 어디선가 서로 섞이듯이 그들은 자연스럽게 사적으로 공적으로

운명적으로 인생이 섞여들게 되었다.”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로 불렸던 순간부터“타자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을 정의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되었다. 김수경은 1996년 12월 마침내 노무현에게서“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을 듣는다. 마치 오랜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듯이 얼굴이 목까지 새빨개지며 그가 말했었다. 그런데 이 결심의 밑바닥에는 그가 중학교 입학금이 없어 담임선생님에게 다짜고짜 싸대기를 맞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깊이 패어 있었다. 불의不義에 대한 천성적 분노.



5 뉴스 혹은 소설



“나와 노무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나?”이것이 한동안 작가를 괴롭혔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다. 노무현하고 무슨 관계예요? 친구입니다.

아! 후원자시로군요. 어떻게 당신 같은 부르주아가 노무현의 친구일 수 있지요?

부르주아도 한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랑스런 국민이었답니다.”



노무현과 김수경의 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탐구 속에 편입되는 그저 지나가는 투의 환기, 그러나 또렷한 영상. 발터 벤야민의 무덤. 그리고 친구 벤야민의 무덤을 찾으러 떠난 한나 아렌트. 그러나 찾지 못한. 노무현이 그녀에게 문학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노무현과 나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어.

인생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문학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참 이상하지?”



그녀는 영화 ?변호인?이 개봉되기 전 감독 K와 이미 구상했던 노무현에 관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내 친구 노무현>이라는 이 예기치 않은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었다. 노무현의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써볼 생각이었다. 그 터 작업으로 K에게 노무현에 대한 기억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그는 그녀 기억의 신실한 청자였다. 그런데 이 책의 집필로 K와의 작업은 잠정 유예된다.



6 A Chapter for K



자신의 청자였던 K라는 장치를 통해 작가 김수경은 노무현의 가장 내밀한 부분, 인간 노무현의 감성을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노무현의 사랑,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이라는 인간 보편의 심상과 열망, 욕망의 진실을 그녀는 이 장을 빌어 사유한다. 노무현의 사랑은“그토록 거짓 없고, 뻔뻔할 정도로 솔직했던”그의 면모의 또 하나의 반영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개적으로 가진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보다 더한 품위는 없습니다.”



“진실보다 더 품위 있는 게 어디 있겠어?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노무현은 그가 누구에게 질문을 받으면

거짓말로 대답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인간이었거든.”



7 긴 여정 그리고 작별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제사로 시작하는 <내 친구 노무현>의 마지막 장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두 사람이 일종의 합리적, 현실적 작별을 고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의 형상화다. 그런데 진짜 작별은 예기치 못한‘사건’으로, 비극으로 온다. 우리 한국 사회의 기억의 공유, 상처의 공유.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잘 계십시오.

노무현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먼저 방을 나갔다.

그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다. 이 소설을 이 대목에서 멈출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 사회가 한 정치인과 한 시인 사이의 우정을 이 정도에서 멈추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친구 노무현>이 아직 대통령으로서 공적 생활을 하지 않았던 노무현과의 사적인 만남들에 대한 기억들이라면 이어 나올 <이것은 소설이다>는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를 그린다. 진실이며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언론들에 의해서 작성된 기사 뉴스 등의 자료와 허구를 표방한 그녀의 글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짚어볼 것이다. 이어 나올 <62세의 이혼>은 국가, 사회가 어떻게 한 개인의 인생에 내재화되어 어떻게 얼개를 만들어 현재의‘나’라는 존재로 와 있는지 묻는다. 그것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대한 그녀 자신의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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